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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속의 삶의 智慧 - 陶朱之富(도주지부)
안종운  |  ahnjw45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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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3.31  07: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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陶朱之富(도주지부)
陶 : 질그릇 도 朱 : 붉을 주 之 : 갈 지(…의) 富 : 부자 부

[출전] : '사기(史記)' 화식전(貨殖傳)
[해석] 도주공(陶朱公)의 부(富)란 뜻으로 큰 부를 일컫는 말이다.

월(越)나라 때 범려(范려)라는 명신이 있었는데 그의 늙었을 적의 이름은 도주(陶朱)였다.
월왕(越王) 구천은 범려의 말을 듣지 않고 오(吳)나라와 싸워 크게 패하였다. 구천은 범려의 조언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후일을 기약하면서 오나라와 굴욕적인 화해를 하게 되었다.
범려의 조언에 힘입어 구천은 부국강병에 힘써 20년 뒤에는 드디어 오를 멸망시키고 패자(覇者)가 되었으며 범려는 상장군이 되었다.
그러나 범려는
"나는 새가 없어지면 활이 더 이상 필요치 않으며 민첩한 토끼가 죽으면 좋은 개도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어 잡아먹히게 된다." 고 말하면서 제(齊)나라로 건너갔다.

제나라에서 범려는 이름을 치이자피(치夷子皮)로 바꾸고 장사를 시작하여 엄청난 부를 얻었다. 제나라에서는 그의 재능을 높이 사 그를 재상으로 삼고자 했다.

"천금의 부를 누리면서 재상이 된다는 것은 영화의 극치이다. 오래도록 높은 명성을 유지하는 것은 좋지 않다." 고 말하면서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나누어주고 도(陶)로 옮겨갔다.

거기서도 그는 장사를 시작해 큰 부를 얻게 되어 도주공(陶朱公)이라 불리게 되었는데 이것도 역시 아낌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리하여 그는 17년동안 세 차례나 큰 부를 얻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 칭송을 받았는데 가업을 물려받은 후손들도 더욱 큰 부를 얻게 되었다.

이후 큰 부자가 된 사람을 도주지부(陶朱之富)라고 부르게 되었다.

 요즈음 정권 이양기에 퇴임을 앞둔 통치자 영부인의 과도한 사치에 대하여 온통 나라 안이 시끄럽다.
 이유야 어떠하든 국민들의 나쁜 추억 속으로 남기지 말고 도주공 처럼 취임 당시부터 현재까지 구입한 옷과 장식품에 대하여 비용 출처를 불문하고 청와대에 남겨두고 홀가분하게 양산 사저로 돌아감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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