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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居진천 死去용인’ 은 傳說속의 옛말‘生居용인 死去용인’이라!, 용인에 8景이 있다.
안종운  |  한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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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27  1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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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운  한자신문

<저작권자 © 한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生居진천 死去용인' 살아서는 진천이 좋고 죽어서는 용인이 좋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말도 變化 하여.‘생거용인 사거용인’즉 살아서도 용인이 좋고 죽어서도 용인이 좋더라! 라는 말이다.

용인은 예로부터 山紫秀麗한 고장으로 山勢가 順厚하여 士大夫家의 墓所가 많기에 明堂자리가 많기로 有名한 곳이다. 모현면 능원리 高麗忠臣 圃隱 정몽주를 비롯한 김대건, 남이, 조광조, 허균, 유형원, 박포, 남은, 민영환, 이완, 이익 과 같은 한 時代를 風靡한 人物들의 墓所가 散在되어있다.

굳이 옛 聖賢들의 墓所를 떠나 더라도 昨今의 故 김대중 大統領도 先親의 墓를 용인으로 移葬하고 大統領에 當選된 것을 견주어 볼 때 風水를 모르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斟酌하여 봄직 하다.

용인에는 지금 까지도 明堂은 分明히 있지만 밝혀지지 않은 몇 곳이 있다. 양지면 주북리 가장골 마을에서 금어리 어매실로 가는 고개를 俗稱 明堂 고개라고 부른다. 그 隣近에 분명 明堂이 있지만 아직 明堂자리를 찾지 못하였다고 傳하고 있다.

또한 處仁區 柳放洞 지장실 마을에 내려오는 지장실 明堂자리의 전설 옛 날 어느 고을 郡守로 있던 父親 이 돌아가자 明堂을 찾아 헤메다 結局 지장실에서 明堂을 찾아 屍身을 모셨다.

兄弟들은 훗날 누군가 이 자리를 貪내 빼앗길 것을 念慮 하여 封墳도 없이 埋葬 하였고 그리고 바로 옆에 빈 관을 여러개 함께 묻고 自己들만 알 수 있도록 標示를 한 後 돌아 갔다.

以後 그 後孫들은 날로 繁昌하고 財産도 늘어 나고 榮華로운 일만 생겨 났으나 反對로 용인 地域에는 極甚한 가뭄이 들었다

마을의 어느 한사람이 용한 점쟁이에게 찾아가 물은 즉 이 地域은 明堂의 德澤으로 恩澤을 입었으나 누군가가 明堂을 건드려 災殃을 입게 되었다는 것이다 .

그 以後 마을 住民과 점쟁이는 여러날에 걸쳐 明堂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封墳도 없는 明堂을 찾기란 쉬운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점장이는 山 꼭대기에서 쉬면서 周邊을 살피는데 지장실 쪽에서 祥瑞로운 빛이 發하는 것을 發見 하고 마을 靑年과 함께 그곳을 파 보았다
그 곳에서 며칠 동안이 땅을 파기 始作 한후 열두개나 되는 빈 棺을 파낸 다음 또 하나의 棺을 들어 냈다.

바로 이 棺을 열자 마자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치고 소나기가 쏟아 졌으며 . 바로 이 곳이 明堂자리 였다고 전하는 說話 있으나, 마을 住民들은 只今까지도 그 明堂자리는 다시 찾을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王朝實錄에서 都邑을 定하는데 네가지 前提條件을 提示하고 있다.
그 첫째가 山川形勢의 風水 였으며
두 번째 漕運(조운:배로 물건을 실어나름)이 便利 한지의 與否
세 번째 四方으로 道路가 고르게 나 있는지의 與否
네 번째 城郭을 築造 할 수 있는 與件이 되는지가 關鍵으로 하고 있다.

용인의 形勢는 경안천을 따라 예전에는 처인구 폭곡읍 영문리와 유방동 사이에 있는 俗稱 매머루 洑까지 배가 드나 들었으며 一部 사람들은 고림동 임원까지도 배가 올라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바 있다

그리고 四方으로 난 道路 용인 밖에 더 있을까?
京釜高速道路와 嶺東高速道路가 縱橫으로 交叉하는 交通의 要衝地로 全國에서 제일긴 高速道路가 貫通하고 있어 京釜高速道路 兩軸을 中心으로 아파트 團地 密集地域 으로 急速한 發展을 가져오고 있으며 全國에서 人口 增加率이 제일 높은 地域 이기도 하다

얼마전 까지 용인을 일컬어 9多의 고장이라 하여 全國에서 제일 긴 高速道路와 인터체인지. 大學校. 公園墓地. 골프장 .硏修院.博物館. 觀光地등이 곳곳에 集中되여 있다.

모현면 초부리에 所在한 용인 自然 休養林은 首都圈에서 가까운 距離에 位置 하고 있기 때문에 人氣가 좋고 公休日엔 入場客이 많아 事前 豫約制를 導入 할 程度로 人氣가 좋은 곳이다.

이만 하면 國家 都邑地로도 遜色이 없지 않을 까!
용인의 자랑 용인 八景에 대한 仔細한 內容은 뒤에서 다시 하기로 하고,

 生居진천 死居 용인에 대한 이야기 卽 왜 살아서는 진천이 좋고 죽어서는 죽어서는 용인이 좋은지에 대해 먼저 짚어보자.

只今 으로부터 4백여 年 前, 용인군 이동면 卯峯里에 한 사람이 살았다.
父母도 親戚도 없는 사람으로 남의 머슴살이를 하였으나 워낙에 正直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信望을 얻었다.

마을 사람들은 나이 三十이 되도록 장가를 못 간 총각이 안타까워 그와 處地가 비슷한 女子와 婚禮를 치러 주었다.

夫婦는 火田을 일구며 살았다. 婦人은 매일 男便을 위해 십 리나 떨어진 산골짜기로 점심을 갖다 주었다. 男便이 점심을 먹는 동안 아내는 苦生하는 男便을 돕기 위해 火田을 일궜다. 
그 사이 疲困한 男便은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잤다. 그런데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더니 산 밑으로 돌이 굴러떨어졌다.

놀란 아내는 서둘러 山 아래로 내려갔지만, 이미 男便은 돌에 치어 죽은 뒤였다. 아내는 大聲痛哭하며 “우리 男便을 살려 달라.”고 울었다. 이 소리를 듣고 마을 사람들이 찾아왔지만 數千斤이나 되는 돌을 치울 수가 없어 돌 밑에 男便을 묻었다.

죽은 男便은 저승에 갔다. 저승의 崔參判이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묻자, 아무개 몇 살이라 했더니, “너는 아직 죽을 때가 안 됐다. 그러니 다시 내려가 살아라.” 하였다.

그리하여 命令을 받고 내려왔으나 屍身이 큰 바윗돌에 치어 죽어 있으므로 接神할 수가 없었다. 용인 사람은 할 수 없이 全國을 떠돌아 다니다 忠淸北道에 있는 진천의 五百 石 부잣집 앞을 지나게 되었다.

마침 그 집 아들이 四十이 안 돼 後嗣를 잇지 못하고 죽자, 그 집 어머니가 或是나 아들이 살아날까 하는 마음에 一週日이 되도록 葬禮를 치르지 않고 있었다.

接神을 못하고 있던 용인사람은 죽은 진천사람의 身體에 가서 接神하여 살아났다. 살아난 용인 사람은 每日같이, “용인군 이동면 묘봉리에 내 妻가 몇 살이고, 아무 아무 해에 장가를 들었습니다.”라는 말만 反復하였다.
 
이를 異常히 여긴 어머니가 人馬를 거느리고 묘봉리를 찾아갔더니, 그곳에 素服을 입은 女子가 울고 있었다. 어머니는 婦人에게 물을 한 바가지 떠달라고 하여 마신 後, 우는 自初至終을 물었다.

“事實 저는 어려서 早失父母하고 이 집에 시집왔는데 不過 일 年도 안 돼서 男便이 죽었습니다. 믿고 살 사람이 없어 이렇게 每日같이 웁니다.
” 이 말을 들은 진천 어머니는, “그러면 當身은 내 며느리요. 當身 男便이 저승에 갔다가 우리 아들한테 接神을 했으니 우리 집으로 같이 갑시다.” 하고는 가마에 태워 진천으로 데리고 갔다. 진천에 到着해 보니, 男便의 얼굴은 다르지만 音聲은 틀림없이 같았다.

이렇게 해서 용인사람은 진천사람이 되어 진천婦人과용인 婦人을 데리고 살게 되었다. 진천 本婦人에게 두 아들을 낳고 용인婦人 에게서는 세 아들을 낳고 七八十 年을 살다가 죽었다.

아버지가 죽자 진천아들과 용인아들 사이에 아버지의 魂魄을 서로 모시겠다고 分爭이 일어났다. 結局 名官으로 이름난 진천郡守한테 가서 訟事를 하게 되었다.

“살아서는 어디서 살았느냐?”고 진천군수가 물어 보자 아들들은 한 목소리로 “진천서 살았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진천군수는, “그래? 그럼 生居진천 했으니 死去용인 해라.” 하였다.

살았을 때는 진천에서 살았으니 죽어서는 용인에 살라는 判決이었다. 그래서 魂魄을 용인아들이 모시게 되었다. 이로부터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란 말이 나왔다는 이야기다.

생거진천 사거용인에 대한 傳說은 이외에도 두 세 가지가 더 傳해 내려오고 있으나 省略키로 하고, 생거용인, 사거용인이라!
왜 살아서도 용인이 좋은지 앞에서 말한 용인의 아름다운 景致 八景에 대해 알아보자!

용인 八景 제1景 城山日出(성산일출)
용인시 기흥구 중동에 있는 城山(417.5m) 頂上에서 보는 日出光景으로서 발 밑에 펼쳐지는 肉重한 봉우리들과 어울려 壯觀을 이룬다.
城山의 日出은 1年 4季節 아름답고 親近한 느낌을 갖게 해준다.

特히 새해 아침에 보는 日出光景은 아름다움에 神秘스러운 느낌이 더해져 보는 이들의 感歎을 자아낸다. 日出과 함께 城山 頂上에서 보는 眺望도 뛰어난데, 한쪽으로는 西海바다로 이어지고 북쪽으로는 관악산과 도봉산까지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펼쳐진다.

또한 해가 긴 날 저녁 무렵에는 이동면 어비리 貯水池를 붉은 빛으로 물들이는 夕陽을 볼 수 있다. 城山에 오르는 登山路는 기흥구 중동-관음사-통화사-頂上에 이르는 길과 백령사-통화사-頂上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용인八景 제2景 魚肥落照(어비낙조)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어비리에 있는 松田貯水池에서 해질 무렵 볼 수 있는 아름다운 景致이다.
漁肥里(어비리)는 地形이 물고기의 날개 지느러미처럼 생겼다고 하여 옛날부터 어비촌이라 불렸다.

묵리, 서리, 천리에서 흐르는 물이 어비촌 가운데로 흘러들자 1972년 堤防을 쌓아 松田貯水池를 만들었다. 貯水池는 45번 國道를 따라 安城 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데, 송전에서 묘봉리로 들어서는 언덕길에서 보이는, 넓은 水面 위에 해가 붉은 빛을 드리우다 사라지는 모습이 특히 壯觀이다.

周邊에 있는 삼봉산, 시궁산에 올라 山 頂上에서 갈대숲 사이로 붉은 태양이 스러지는 모습을 보거나, 땀 흘린 뒤 시원한 저녁바람을 맞으며 松田저수지에 펼쳐지는 落照를 보는 맛도 一品이다.

용인 八景 제3景 곱든고개와 龍潭眺望(용담조망)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리에 있는 곱든고개와 이 고개에서 내려다본 원삼 북쪽 뜰의 아름다운 景致를 말한다.
곱든고개는 동부동 해곡동에서 원삼면 사암리로 넘는 고개로 굽은고개, 곱등고개라고도 한다. 現在는 2車線 鋪裝道路로 바뀌었지만 險한 地形 때문에 옛날부터 호랑이가 자주 出沒하여 고개 밑에 범암굴, 호리 등의 地名이 생길 程度였다.

또한 임꺽정이 죽산 칠장사에 있는 스승을 만나러 가다 가짜 임꺽정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傳해져 오는 곳이기도 하다.

해곡동에서 고개를 따라 올라 고갯마루에 이르면 남쪽으로는 磨崖佛(마애불)로 有名한 문수봉, 북쪽으로는 칠봉산에서 독조봉까지 오르는 登山路 入口가 있다.
고갯마루에서 사암리 쪽으로 내려서면 왼쪽에 칠봉산, 갈미봉, 영실산, 독조봉이 둘러싸고 태봉산, 건지산, 수정산이 우뚝 서 있다.

오른쪽에는 문수봉의 산봉우리가 이어져 있고 그 가운데 사암貯水池를 中心으로 논과 밭, 우거진 숲, 農家의 모습들이 여기 저기 펼쳐져 있어 調和로운 農村 風景의 眞髓(진수)를 느끼게 해준다

 

용인八景 제4경 光敎山 雪景(광교산설경)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 쪽에 펼쳐지는 광교산의 雪景으로 雄壯함과 아름다움이 뛰어나다.
형제봉, 광교산, 백운산, 바라산, 청계산으로 이어지는 긴 山陵이 하얗고 고요하게 눈에 덮인 景致는 雪景의 眞髓로 꼽힌다.

용인시 동쪽 죽전과 모현 오산리 사이에 있는 대지고개에서 特히 아름다운 雪景을 鑑賞할 수 있으며 죽전 고갯마루에서 대지산 쪽으로 登山을 즐기며 바라보는 景致도 느낌도 빼어나다.

 

용인八景 제5景 仙遊臺 四季(선유대 사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 2리에 있는 선유대의 빼어난 景致를 일컫는다.

옛날부터 老人들이 모여 벗들과 이야기하며 風流를 즐기던 곳으로 第一初等學校에서 약 100m 되는 작은 山 아래 자리잡고 있다.
우거진 나무 사이에 큰 바위를 디딤돌삼아 지은 자그마한 亭子가 있고 그 아래 실개천이 흘러 모이는 곳에 자그마한 연못이 있다.
最近에 面事務所에서 아기자기하게 造景을 設置하고 運動器具, 木材다리 등을 配置해놓아 休息空間으로서 옛 先祖들의 風流를 되살리고 있다. 周圍에는 논과 밭, 農家들이 오목조목 펼쳐져 있어 農村의 여유로운 情趣를 느낄 수 있다

 

용인八景 제6景 鳥飛山(조비산)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에 펼쳐져 있으며 용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山으로 꼽힌다.

동국여지리 죽산편의 ‘현 북쪽 15리에 봉우리 하나가 우뚝 솟아 돌을 이고 있는데 山이 높고 가파라 빼어난 模樣이 奇異하게 보인다’라는 記錄과 東國輿地勝覽의 ‘한 봉우리가 우뚝 솟아 돌을 이고 있는데 그 돌구멍에 흰 뱀이 있어 每年 큰 물이 질 때 청미천에 내려와 사람과 家畜에 憂患이 되었다’는 記錄이 傳하는 등 傳說과 이야기가 豊盛한 山이다.

朝鮮時代 初期에 太祖가 都邑을 서울로 옮길 때 只今의 三角山 자리에 山이 없자, 보기 좋은 山을 옮겨놓는 자에게 賞을 내린다 하였다. 이 이야기를 듣고 한 將帥가 조비산을 서울로 옮겨가는 途中 이미 누군가가 삼각산을 옮겨놓았다는 소리를 듣고 禍가 나 只今의 場所에 내려놓고 서울을 向해 방귀를 뀌었다.

이 이야기를 傳해들은 朝廷에서는 不敬한 山이라 하여 조폐산, 역적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야기에서처럼 예전에는 山의 머리가 남쪽으로 뻗어 있었으나, 1970年 무렵 硅石을 캐기 위해 머리부분의 바위를 毁損해버려 이야기의 意味와 재미가 줄어들었다.


용인八景 제7景 琵琶潭 晩楓(비파담 만풍)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갈담1리에 있다.
朝鮮 肅宗 때 領議政을 지냈으며 文章과 德望이 뛰어난 남구만(南九萬:1629~1711)이 落鄕하여 아름다운 景致에 반해 亭子를 짓고 琵琶를 타며 즐겼다고 傳하는 곳이다.

남구만은 이곳에서 지내면서 (靑丘永言) 에 실린 有名한 時調 ‘同窓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를 지었다고 傳해진다. 鬱蒼하게 우거진 숲과 한가로운 農村의 情趣가 아름다워 마치 그림 속에서 빠져나온 듯하다. 의령남씨 宗中에서 세운 南九萬의 詩歌碑가 있다.

 

용인八景 제8景 稼實(가실)벚꽃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湖巖美術館(호암미술관) 周圍에서 피어나는 벚꽃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景致이다.
가실리에 있는 에버랜드 周邊에는 향수산에서 흘러내린 물로 이루어진 養魚貯水池 삼만구천지가 있는데, 이 貯水池와 湖巖美術館 周圍의 景致가 잘 어우러져 매우 아름답다.
 
特히 봄철에는 周邊에 있는 수많은 벚나무들이 일제히 꽃을 피우는데, 周圍의 다른 꽃들과 함께 아름다운 꽃동산을 이루어 壯觀을 演出해낸다.

용인에서는 이제 봄 뿐만아니라 사시사철 꽃 구경을 할수 있다. 법꽃피면 애버랜드 全體가 벚꽃이고 장미祝祭, 튜립祝祭도 있고 한택植物園의 野生花구경, 農村테마파크 우리랜드에서 사철 꽃구경하고 모현면의 自然 休養林 등 交通의 要衝地 이면서 觀光休養都市로서 面貌를 갗춘 용인 이만 하면 生居용인 死去용인이 아닐까요?

살아서도 용인이 좋고, 죽어서 용인이 좋다.살아서도 좋은 환경에 살고 죽어서도 ‘용인평온의 숲’ 火葬場에서 마지막 저승가기 위해 火葬할 때에도 용인사람은 十萬원이요!  外地인은 그의 아홉배라!.
죽어서도 대우 받으니 용인이 살기 좋은곳 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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