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旦의 아르메니아 - 제3일(2024. 9. 30)

행복한 우리 삶을 측정하는 바로메터로 시간, 공간, 인간의 세 변수가 일상적으로 원용된다. 아르메니아 국민들 천년 가까이 비참한 쓰라린 역사를 숨기며 살아 온 국민답게 차분하고 침착하며 어떤 외압에도 분연히 이겨낼 의지가 깔려 있는 것 같아, 그들에게서 배울 게 많다. 이들은 시간에 대한 관념이 비교적 정확한 것 같다. 길을 걷는 시민들 걸음도 서두르지 않고 여유가 있어 서울 거리와 구별된다. 움직이는 에스칼레이터 위에서 뛰는 사람은 우리가 제일 많다.

시골과 도시 간 주택, 생활상에서 구별의 실익이 없어 공간 활용에서 동질성이 느껴진다. 주변국가나 세계 도처에 흩어져 사는 아르메니아 출향민들 애국심이 고국 어려움 해소에 큰 힘이 되고 있다니 중국 재외동포 성원 못지않은 빽이 되고 있다. 그들 성원이 그림, 조각, 예레반 건축 등 문화예술 면에도 깊이 반영되어 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어제 예레반 시내 도보 관광을 마치고 오늘은 남부 아르메니아 고원지대 명소를 1일 관광객이 되어 밴에 올랐다. 국토가 좁은 나라에서 수도 예레반은 비교적 중앙에서 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고원지대 모습을 차창으로 흘려보내며 가을이 그리는 고지대 황량함, 숲이 없는 노령기 산줄기와 구릉이 연출하는 무표정 연출에 식상할만 하면 한번씩 들려 환각을 일깨운다. 역시 우리는 걷는게 좋아 나선 사람들, 단체로 몰려다니는 관광은 차순위 구경방법이다.

남쪽으로 40분 가서 들른 옛 수도원 터, 지금은 용도가 달라졌다. 가지 못하는 그들 영혼의 영산, 아라라트산 (5,137m)을 보며 마음에 담아가는 명소로 우리 분단의 망향대에 선 실향민 같이 가슴 아픈 현대사의 흔적에 공감한다.

1,700년 전 세계 최초로 국교로 선포한 정신적 토대로 가꿔 온 그들에게 노아의 방주 전설이 살아 있는 성산을 터키에 넘겨주고 바라보는 마음에 깊은 동정이 간다. 고개를 넘었다 하면 보통 2,200m 이상, 그래도 도토가 깨끗이 정비되어 있어 고산지대 느낌이 크지않다. 두번째도 고색창연한 노라방크 수도원, 초기 수도자 양성 교육기관이라지만 황량한 바위산에서 생활이 가능했을까 의문이다.

제르무크 온천 의료 휴양지는 오래 가꿔온 역사가 말해주듯 푸른 숲이 우거진 아늑한 안식처가 되고 있다. 발 바쁜 과객도 여유를 갖고 인공호수 주변을 30분쯤 한가한 산책으로 굳어진 근육을 이완시킬 호기도 누렸다. 아직 투자가 충분치 못해 중단된 건축물들이 눈에 띄지만 다듬어 놓으면 고원지대의 꽃이 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아레니 포도주 제조시설은 아르메니아에 역사의 깊이를 높여 품격을 한참 끌어올린 자랑거리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무려 6,200년 전부터 항아리에 담궈 온 포도주 제조 시설이라니 믿거나 말거나, 목마른 과객의 목을 타고 넘어가는 한 모금 와인 시음은 사막을 달려온 대상에게 오아시스처럼 시원, 신선, 짜릿한 감미로움이다. 다시 돌아온 수도권은 차량 홍수, 빨간 차미등이 줄지어 선 대기항렬은 거북이보다 더 느리지만 다들 조용히 참을성 양성 훈련을 받아서인지 그저 졸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풀려 어두워진 숙소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