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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列傳 故事(71)負荊請罪[부형청죄]
안종운  |  한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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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07  05:4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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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列傳 故事(71)負荊請罪[부형청죄] 

《사기》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負:질 부 荊:가시나무 형 請:청할 청 罪:허물 죄

풀이: '가시나무를 등에 지고 때려 달라고 죄를 청하다'라는 뜻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처벌해줄 것을 자청한다는 말이다.

구조: 負∣荊 請∣罪
•負∣荊(부형): 가시나무를 등에 지고
-負(질 부) 등에 지다(동사술어)
-荊(가시 형) ‘가시나무 곤장’으로 쓰인다(목적어)
•請∣罪(청죄): 죄를 청하다
-請(청할 청) ‘요청하다’(동사술어)
-罪(허물 죄) 잘못이나 허물로 인하여 벌을 받을 만한 일이다(목적어)

유래:

전국시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 때에는 인상여(藺相如)와 장군 염파(廉頗)가 있어 강국인 진(秦)나라도 감히 조나라를 넘보지 못했다. 인상여는 원래 환자령(宦者令) 무현(繆賢)의 사인(舍人)에 불과했지만, 조나라와 진나라 사이의 화씨벽(和氏璧)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일약 상대부(上大夫)에 올랐다.

그로부터 3년 후, 진왕이 조왕에게 민지(澠池)에서 회동을 요청했다. 조왕은 진나라가 두려워 회동에 응하고 싶지 않았으나 염파와 인상여의 권고로 응하였다. 인상여가 수행했고, 염파는 국경까지 전송했다. 염파는 왕과 하직하며 말했다. “왕께서 무사히 다녀오시기를 빕니다. 거리를 계산해 볼 때 회합을 마치고 돌아오시기까지 30일을 넘지 않을 것 같습니다. 30일이 지나도록 돌아오시지 않으면 태자를 왕위에 세워 진나라의 야망을 끊어 버리도록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왕은 이를 허락하고, 마침내 진왕과 민지에서 만났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진왕이 말했다. “과인은 조왕께서 음악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슬(瑟)을 탄주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조왕이 슬을 연주하자 진나라의 어사(御史)가 앞으로 나와 ‘모년 모월 모일 진왕이 조왕과 만나 술을 마시며 조왕에게 슬을 타게 했다.’고 기록했다. 인상여가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조왕께서도 진왕께서 진나라 음악에 능하다고 들었습니다. 청컨대 분부(盆缻)를 연주하여 서로가 즐기도록 해 주십시오.” 진왕은 노여워하며 허락하지 않았다. 인상여는 분부를 받쳐 들고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진왕에게 청했다. 진왕은 부를 두들기려 하지 않았다. “대왕과 신의 거리는 다섯 걸음도 안 됩니다. 제 목의 피로써 대왕을 적실 수도 있습니다.” 인상여의 협박에 좌우의 사람들이 인상여를 칼로 치려고 했다가 인상여가 눈을 부릅뜨고 꾸짖자 모두 뒤로 물러났다. 진왕은 마지못해 부를 한 차례 두들겼다. 인상여는 조나라의 어사를 불러 ‘모년 모월 모일 진왕이 조왕을 위해 부를 쳤다.’고 적게 했다. 잠시 후 진나라 신하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조나라가 열다섯 성을 바쳐 진왕의 수(壽)를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인상여도 맞받아쳤다. “진나라의 함양을 들어 조왕의 수를 축복해 주셨으면 하오.” 진왕은 주석이 파할 때까지 조나라를 누를 수가 없었다. 조나라 역시 군대를 배치하여 진나라에 대비했으므로 진나라도 감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인상여는 이 공로로 상경(上卿)에 임명되었다.

민지의 회동 후 인상여가 염파의 윗자리에 오르자 염파는 매우 불쾌했다. “나는 조나라의 장군으로 전쟁에 큰 공이 있었다. 그런데 인상여는 겨우 입과 혀를 수고롭게 했을 뿐인데 나보다 윗자리에 있다. 게다가 상여는 본래 천한 출신이다. 부끄러워 도저히 그의 밑에 있을 수 없다.” 염파는 공공연히 다음과 같이 말하고 다녔다. “인상여를 만나면 기필코 모욕을 주고 말겠다.” 이 말을 전해들은 인상여는 염파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인상여는 조회 때마다 병을 칭하고 나가지 않았다. 염파와 지위 다툼을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인상여는 외출을 했을 때 멀리 염파가 오는 것이 보이면 수레를 끌고 피해 숨어 버리곤 했다.

인상여의 사인들이 불평을 쏟아 놓았다. “저희가 친지를 떠나 당신을 모시는 것은 당신의 높은 의기를 흠모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은 염파와 동렬에 있으면서 염파가 나쁜 소리를 하고 다니는데 그가 두려워 피해 숨으시며 심히 두려워하십니다. 이는 평범한 사람들도 부끄러워하는 일이거늘, 하물며 장군이나 재상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저희는 불초하여 떠나갈까 합니다.” 인상여가 이들을 만류하며 물었다. “그대들이 볼 때 염장군과 진왕 중 누가 더 무서운 사람인가?” “진왕만 못하지요.” “그런 진왕의 위엄을 상대하여 나는 궁정에서 그를 꾸짖고 그 신하들을 욕되게 했다. 내 비록 노둔하나 어찌 염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 생각해 보건대 강한 진나라가 감히 우리 조나라를 공격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두 마리 호랑이가 싸우게 되면 형세로 보아 둘 다 무사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국가의 급한 것을 앞세우고 사사로운 원한을 뒤로 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염파는 웃옷을 벗고 가시나무 회초리를 등에 지고 인상여의 집 문 앞에 이르러 사죄했다. “비천한 사람이 장군께서 이토록 관대한 줄을 알지 못했소.” 두 사람은 마침내 화해를 하고 문경지교를 맺었다.

이 이야기는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나오는데, 염파가 웃통을 벗고 가시나무를 등에 지고 인상여를 찾아갔다는 말에서 ‘부형청죄’가 유래했다. ‘육단부형(肉袒負荊)’이라고도 한다.

인상여가 이처럼 면지의 회동에서 시종일관 진왕을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기본적으로는 인상여의 능력이 뛰어난 덕분이기도 했지만, 팽팽하게 형성된 각국 간의 대결 구도를 잘 이용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진나라는 초나라를 칠 계획으로 주력부대를 이미 국경으로 이동시킨 상황이었다. 진나라가 안심하고 초나라를 치기 위해서는 조나라를 묶어 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진왕은 일단 조나라의 기세를 꺾어 놓으려고 회동을 요청했던 것이고, 진왕의 생각과 계획을 꿰뚫고 있던 인상여는 이런 상황을 최대한 이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조나라 왕이 탄 슬은 현악기이고, 진나라의 악기인 분부는 타악기 축에 들지도 못하는 타악기이다. 진나라는 융적(戎狄)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서쪽의 편벽한 지역으로 아직은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으며, 그 음악도 수준을 논하기에는 아직 거리가 있었다. 인상여는 문화적 자존심을 건드려 상대방을 압도한 것이다. 진나라의 수준 낮은 음악에 대해서는 진시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이사(李斯)의 〈간축객서(諫逐客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저 옹기를 치고 장군을 두드리며, 쟁을 타고 넓적다리를 두드리며, 우우 하고 노래하며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진정한 진나라의 소리(음악)다.
여기서 말하는 ‘장군’이 바로 분부로, ‘부(缶)’라고도 한다.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어도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사과하는 마음으로 ‘부형청죄’를 하면 용서받게 될 것이다.

원문: 廉頗聞之, 肉袒負荊, 因賓客至藺相如門謝罪. 曰, 鄙賤之人, 不知將軍寬之至此也. 卒相與驩, 爲刎頸之交.
(염파문지 육단부형 인빈객지인상여문사죄 왈 비천지인 부지장군관지지차야 졸상여환 위문경지교)

이 말을 전해 들은 염파는 웃옷을 벗고 가시나무 회초리를 등에 지고 인상여의 집 문 앞에 이르러 사죄했다. “비천한 사람이 장군께서 이토록 관대한 줄을 알지 못했소.” 두 사람은 마침내 화해를 하고 문경지교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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