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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文眞寶(고문진보) 36話 送楊巨源少尹序(송양거원소윤서) 韓愈
안종운  |  한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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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25  08:3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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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운  한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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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나무는 내 션친께서 심은 것이고, 저기에 있는 물과 언덕은 내가 어렸을 때에 낚시질하고 놀던 것이다. 고향 사람들은 그를 더욱 공경하지 않느이가 없어서 자손들에게 훈계하기를 양후께서 그의 고향을 떠나지 않음을 본받으라고 할 것이니라.

공직에서 퇴직하고 물러나니 내가 살 집한채가 없구나 성독 허인향

 

   
 

   送楊巨源少尹序(송양거원소윤서) 韓愈(한유)
           (少尹 楊巨源을 전송하는 詩序)

白樂天(백낙천)이 秘書(비서) 楊巨源(양거원)에게 준 詩(시)에 이르기를 “내 일찍이 한 화살로 遼東城(요동성) 취했다는 말 들었으니, 서로 앎 비록 새로우나 옛정이 있었네. 淸白(청백)함은 세 조정에 어느 누가 필적한 것인가? 白頭(백두)에 사해의 반이 형제가 되었네.” 하였다. 許氏(허씨)는 이르기를 楊氏(양씨)가 일찍이 盧洛州(노락주)에게 준 詩(시)에 “세 칼은 益州(익주)를 꿈꾸고 한 화살로 遼東城(요동성)을 취했다.” 하니 이 때문에 알려졌다. 그러므로 公(공)이 詩(시)를 잘하여 後進(후진)을 가르쳤다고 말한 것이다.

昔에 疏廣受二子 以年老로 一朝辭位而去하니 于時에 公卿이 設供帳祖道都門外할새 車數百兩이요 道路觀者 多歎息泣下하여 共言其賢하니
(석 소광수이자 이년로 일조사위이거 우시 공경 설공장조도도문외 거수백량 도로관자 다탄식읍하 공언기현)

옛날에 소광․소수 두 사람은 나이가 늙었다고 하여 하루 아침에 벼슬자리를 버리고 떠났다. 그 때에 공경들이 포장을 치고 술자리를 마련해놓고 도성 문 밖에서 길 제사를 지내며 송별 잔치를 벌였었는데, 수레 수백 량이 모여들었고, 길거리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탄식을 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그들의 현명함을 말하였다.

漢史旣傳其事하고 而後世工畵者 又圖其迹하여 至今照人耳目하여 赫赫若前日事하니라
(한사기전기사 이후세공화자 우도기적 지금조인이목 혁혁약전일사)

한나라 역사에는 그 일을 전하고 있거니와 또 후세에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은 그러한 자취를 그림으로 그리어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귀와 눈에 비치고 있어서, 어제 일처럼 훤하게 전해지고 있다.

國子司業楊君巨源이 方以能詩로 訓後進이러니 一旦에 以年滿七十으로 亦白丞相하고 去歸其鄕하니 世常說古今人不相及이라하니 今楊與二疏는 其意豈異也리오
(국자사업양군거원 방이능시 훈후진 일단 이년만칠십 역백승상 거귀기향 세상설고금인불상급 금양여이소 기의기이야)

국자사업 양거원은 마침 시를 잘 지어 후진들을 훈도하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일흔 살이 찼다하여 역시 승상에게 아뢰고 벼슬자리를 떠나 그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세상에서는 늘 말하기를 “옛 사람을 지금 사람들이 따를 수 없다고.”고 하나, 지금 양거원의 경우는 소광․소수와 그 뜻이 무엇이 다르다고 하겠는가?

予忝在公卿後하여 遇疾不能出하니 不知楊侯去時에 城門外送者幾人이며 車幾兩이며 馬幾駟며 道傍觀者亦有歎息 知其爲賢與否며 而太史氏又能張大其事爲傳하여 繼二疏蹤跡否아 不落莫否아 見今世에 無工畵者하니 而畵與不畵는 固不論也니라
(여첨재공경후 우질불능출 불지양후거시 성문외송자기인 거기양 마기사 도방관자역유탄식 지기위현여부 이태사씨우능장대기사위전 계이소종적부 불락막부 견금세 무공화자 이화여불화 고불논야)

나는 욕되게도 공경의 말석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병이 나서 나가보지도 못하였으니, 양거원이 떠날 적에 성문 밖에서 전송한 이가 몇 사람이나 되었는지, 수레는 몇 량이나 모였고, 말은 몇 필이나 모였었으며, 길 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역시 탄식하면서 그의 현명함을 알아주었는지 어떤지 알지를 못한다. 그리고 사관은 또 그에 관한 일을 과장해 가지고 전함으로써 옛 두 소씨의 발자취를 계승토록 하려 한 것은 아닐가? 쓸쓸하지는 않았는가? 지금 세상을 보면 그림을 잘 그리는 이가 없으니, 그 관경을 그리고 그리지 않은 것은 본시 따지지 않기로 하였다.
然이나 吾聞楊侯之去에 丞相이 有愛而惜之者하여 白以爲其都少尹하여 不絶其祿하고 又爲歌詩以勸之하니 京師之長於詩者 亦屬二和之라하니 又不知當時二疏之去에 有是事否아 古今人同不同을 未可知也로다
(연 오문양후지거 승상 유애이석지자 백이위기도소윤 부절기록 우위가시이권지 경사지장어시자 역속이화지 우불지당시이소지거 유시사부 고금인동불동미가지야)

그러나 내가 들으니 양거원이 떠날 적에는 승상께서도 그를 사랑하고 애석히 여겨, 천자께 아뢰어 그의 고을의 소윤으로 삼아주어 그의 녹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고, 또 시를 지어 노래하며 그를 겪려 하니, 장안의 시를 잘 짓는 사람들은 모두 이에 따라 화답시를 지었다 한다. 그런데 옛날 두 소씨가 떠날 적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지 어떤지는 모를 일이다. 옛사람과 지금 사람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은 잘 알 수가 없다.

中世에 士大夫 以官爲家하여 罷則無所於歸하나니 楊侯始冠에 擧於其鄕하여 歌鹿鳴而來也이어니
(중세사대부 이관위가 파칙무소어귀 양후시관 거어기향 가록명이래야)

중세의 사대부들은 관청을 집으로 삼고 있어서 벼슬을 그만두면 돌아갈 곳이 없었다. 양거원은 스무 살이 되자, 고향에서 추천을 받아 녹명을 노래하며 과거를 보러 왔었고,

今之歸에 指其樹曰 某樹는 吾先人之所種也요 某水, 某丘는 吾童子時所釣遊也라하니 鄕人이 莫不加敬하여 誡子孫하여 以楊侯不去其鄕爲法하니 古之所謂鄕先生沒而可祭於社者 其在斯人歟인저 其在斯人歟인저
(금지귀 지기수왈 모수오선인지소종야 모수 모구 오동자시소조유야 향인막불가경 계자손 이양후불거기향위법 고지소위향선생몰이가제어사자 기재사인여 기재사인여)

지금 돌아감에 있어서 그곳의 나무를 가리키며 이르기를 “저 나무는 나의 선친께서 심으신 것이다.”하고, “저 냇물과 저 언덕은 내가 어렸을 적에 낚시하며 놀던 곳이다.”고 말하며 고향 사람들 모두가 더욱 존경하면서 그들 자손들에게 양거원이 그이 고향을 버리지 않은 것을 본받으라고 훈계할 것이다. 옛날부터 말하던 “고향 선배로서 죽은 다음 사에 제사를 모실 수 있는 사람” 이란 바로 이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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