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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158) 창업수성(創業守成)
안종운  |  한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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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26  17: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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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운  한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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創:비롯할‧시작할 창. 業:업 업. 守:지킬 수. 成:이룰 성.

[원말] 이창업 난수성(易創業難守成).
[출전]《唐書》〈房玄齡專〉,《貞觀政要》〈君道篇〉,《資治通鑑》
일을 시작하기는 쉬우나 이룬 것을 지키기는 어렵다는 말.

수(隋:581~619)나라 말의 혼란기에 이세민(李世民)은 아버지인 이연(李淵)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관중(關中)을 장악했다. 이듬해(618) 2세 양제(煬帝)가 암살되자 이세민은 양제의 손자인 3세 공제(恭帝)를 폐하고 당(唐:618~907) 나라를 ‘창업’했다.

626년 고조(高祖) 이연에 이어 제위에 오른 2세 태종(太宗) 이세민은 우선 사치를 경계하고, 천하 통일을 완수하고, 외정(外征)을 통해 국토를 넓히고, 제도적으로 민생 안정을 꾀하고, 널리 인재를 등용하고, 학문‧문화 창달에 힘씀으로써 후세 군왕이 치세(治世)의 본보기로 삼는 성세(盛世)를 이룩했다.

이 성세를 일컬어 ‘정관의 치[貞觀之治:태종 정관 연간(627~649)의 치세]’라고 한다.

‘정관의 치’가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결단력이 뛰어난 좌복야(左僕射) 두여회(杜如晦), 기획력이 빼어난 우복야(右僕射) 방현령(房玄齡), 강직한 대부(大夫) 위징(魏徵) 등과 같은 많은 현신들이 선정(善政)에 힘쓰는 태종을 잘 보필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태종은 이들 현신이 모인 자리에 이런 질문을 했다.

“창업과 수성은 어느 쪽이 어렵소?”
방현령이 대답했다.

“창업은 우후 죽순(雨後竹筍)처럼 일어난 군웅 가운데 최후의 승리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인 만큼, 창업이 어려운 줄로 아나이다.”

그러나 위징의 대답은 달랐다.
“예로부터 임금의 자리는 간난(艱難) 속에서 어렵게 얻어, 안일(安逸) 속에서 쉽게 잃는 법이옵니다. 그런 만큼 수성이 어려운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그러자 태종이 말했다.
“방공(房公)은 짐과 더불어 천하를 얻고, 구사 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났소.

그래서 창업이 어렵다고 말한 것이오. 그리고 위공(魏公)은 짐과 함께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해 항상 부귀에서 싹트는 교사(驕奢:교만하고 사치함)와 방심에서 오는 화란(禍亂)을 두려워하고 있소.
 
그래서 수성이 어렵다고 말한 것이오.
그러나 이제 창업의 어려움은 끝났소. 그래서 짐은 앞으로 제공(諸公)과 함께 수성에 힘쓸까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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