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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歲에 새로 始作하다'…파리에서 꽃피운 이응노 30年
안창호  |  한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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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22  10: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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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뉴스커넥트>를 통해 제공받은 컨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이응노 화백.(이응노 미술관 제공)


(서울=뉴스1) 여태경 기자 = 작고할 때까지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던 고암 이응노(1904~1989)의 도불 60년, 작고 30주기를 기념하는 전시 '원초적 조형본능'이 열리고 있다.

55세의 늦은 나이에 프랑스로 건너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이응노는 낡은 잡지 등을 풀로 붙인 콜라주 작업부터 문자추상, '군상' 연작까지 창조적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원초적 조형본능' 전시에서는 도불 이후의 이응노 작업 30년에 초점을 맞췄다.

양반집에서 태어난 이응노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상경해 서화계 대가인 김규진의 문하에 들어가 문인화와 서예를 배웠다. 이응노는 1943년 '청죽'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해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대나무 그림이 빼어나 죽사(竹史)라는 호를 받았다.

하지만 이전 동양화를 답습하는 화단의 풍조에 한계를 느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일본화와 서양화를 배운다. 이후 이응노는 1957년 뉴욕에서 열린 '한국현대미술전'을 통해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작품이 소장된 것을 계기로 해외 미술계로 눈을 돌리고 1958년 프랑스로 건너간다.

이응노 '인간추상'(People abstract), 1963, collage on canvas, 91.5 x 73 cm (s). 인사아트센터 제공


도불 직후 이응노는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던 콜라주 기법으로 폐자재를 활용하고 그 위에 수묵을 엷게 칠하는 새로운 작업을 시작한다. 도불 2년 만에 당시 유럽의 앵포르멜(informel·비정형) 운동을 주도하던 폴 파케티 화랑과 전속작가 계약을 맺고 1962년 개인전 '이응노, 콜라주'도 열면서 파리 화단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는다.

이후 문인화로 화단에 입문한 이응노는 시서화(詩書畵) 일체를 근간으로 하는 동양미술에 있어서 문자의 필획이 갖는 추상성과 조형성은 오히려 서양의 추상보다 역사가 깊다고 봤다. "동양화의 한문자 자체가 지니고 있는 서예적 추상은 그 문자의 근원이 자연사물의 형태를 빌린 것과, 음과 뜻을 형태로 표현한 것이니 한자 자체가 바로 동양의 추상화적 바탕이 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이응노는 이 같은 생각을 바탕으로 한자와 한글을 현대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콜라주, 수묵, 유화, 타피스트리 등 다양한 형태의 문자추상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생이별한 아들의 행방을 찾아 독일을 방문했다가 동백림사건에 연루돼 2년6개월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동안에도 먹다 남은 밥풀을 뭉쳐 조각품을 만들고 휴지에 간장으로 그림을 그리는 등 300여점의 작품을 남길 정도로 한시도 작품 활동을 놓지 않았다.

이응노 '군상'( People,) 1983, Ink on Korean paper, 101 x 200 cm (s). 인사아트센터 제공


70년 가까이 그림을 그린 그의 일관된 관심사는 사람이었다.

1980년 민주화운동을 계기로 사람을 전면에 등장시킨 이응노는 작고할 때까지 그린 군상 연작 속에 70년의 시간과 예술관을 집약적으로 담아냈다.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도불 60년, 작고 30주기 기념전-원초적 조형본능'에서는 도불 직후 그린 콜라주와 문자추상, 군상 연작은 물론 말년에 그린 수묵화 등 70여점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2월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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