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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列傳 故事(22)秦庭之哭[진정지곡]
안종운  |  한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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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29  22: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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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列傳 故事(22)秦庭之哭[진정지곡]

❏《좌씨전》 〈정공(定公) 4년조〉, 《사기》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秦:진나라 진 庭:뜰 정 之:어조사 지 哭:울 곡

❏ 풀이: 진나라 조정에서의 통곡
'진(秦)나라의 조정에서 곡을 하다'라는 뜻으로,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춘추시대의 신포서(申包胥)와 오자서(伍子胥)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

❏ 구조: 秦庭之↪哭
•秦庭: 진나라 조정
•之: ‘~의’(관형격조사)
•哭: 울 곡은 소리내어 우는 것이다.(동사) ※울 읍은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 유래:
중국 춘추시대의 신포서(申包胥)와 오자서(伍子胥)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진정곡(秦庭哭) 또는 곡진정(哭秦庭), 진정지읍(秦庭之泣)이라고도 한다. 오자서는 초(楚)나라 평왕(平王)이 아버지와 형을 살해하자 초나라를 멸망시켜 복수하겠다고 맹세하였다. 오자서의 친구인 신포서는 사사로운 원한 때문에 조국을 배반하여서는 안 된다며, 만약 오자서가 초나라를 멸망시킨다면 자신이 반드시 나라를 부흥시키겠다고 맹세하였다.

오자서는 오(吳)나라의 합려(闔閭)를 도와 왕위에 오르게 한 뒤, 초나라의 내정이 혼란한 틈을 타서 공격하여 수도까지 진격하였다. 이때 평왕은 이미 죽은 뒤였고, 그의 아들 소왕(昭王)은 피신하였다. 오자서는 평왕의 무덤에서 시신을 파내어 채찍질을 300번 가하고 나서야 원한을 풀었다.

신포서는 이 소식을 듣고 격분하여 소왕을 찾아가서 나라를 부흥시킬 계획을 상의하였으나 힘이 없었다. 신포서는 소왕의 외할아버지인 애공(哀公)이 다스리는 진(秦)나라로 가서 초나라가 망하면 진나라도 결코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며 도움을 청하였다. 그러나 애공은 전쟁을 벌일 마음이 없어 응하지 않았다.
立依於庭牆而哭, 日夜不絶聲, 勺飮不入口 七日
(신포서는 진나라) 궁정의 담벼락에 기대어 서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곡을 하였고 7일 동안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않았다.

진나라 애공은 결국 신포서의 충정에 감동하여 군대를 일으켜 오나라를 공격하였다. 이 고사는 《좌씨전》의 '정공(定公) 4년' 조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진정지곡은 신포서가 진나라에 그러하였던 것처럼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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