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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列傳 故事 (35) 朝露之危[조로지위]
안종운  |  한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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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20  07:3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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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記列傳 故事(35)朝露之危[조로지위]

❏《사기》 〈상군열전(商君列傳)〉
朝 : 아침 조 露 : 이슬 로 之 : 갈 지 危 : 위태할 위

❏풀이: 아침이슬처럼 위험하다.
아침 이슬과 같은 위험이라는 뜻으로, 위험에 처한 불확실한 삶을 비유한 말.

❏구조: 朝露之↪危
•朝露之: 아침이슬처럼
-朝露(아침 조/ 이슬 로) ‘아침이슬’아침이슬은 해가 뜨면 곧 사라진다(비유)
-之(어조사 지) ‘처럼’모양이 서로 비슷하거나 같음을 나타내는 격 조사
•危(위험 위) 위험(危險)은 해로움이나 손실이 생길 우려가 있음. 또는 그런 상태다.

❏유래:
상앙(商鞅)은 위(衛)나라 사람이다. 젊어서 형사 법령(刑事法令)을 공부하기를 좋아하였다. 위(魏)나라의 재상인 공숙좌(公叔座)를 섬겨 중서자(中庶子)가 되었다.

공숙좌가 그의 현명함을 알았으나, 왕에게 미처 추천하기 전에 병에 걸렸다. 병상의 공숙좌는 위나라 혜왕(惠王)에게 상앙을 중용하라고 진언하였다. 그러나 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공숙좌는 측근을 물리고 다시 말하기를, “만일 상앙을 등용하지 않으시겠다면 죽여버리십시오. 결코 남의 나라로 가게 해서는 안됩니다.” 하였다.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왕이 나간 뒤 공숙좌는 상앙을 불렀다.

공숙좌는 왕과의 대화를 전하고 달아날 것을 권했다. 상앙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왕은 재상의 말을 듣지 않을 겁니다.” 과연 왕은 그를 체포하지 않았고, 공숙좌도 병으로 죽었다.

상앙은 마침 진(秦)나라의 효공(孝公)이 널리 인재를 찾고 있음을 알고 진나라로 갔다. 효공을 만난 상앙은 세 번째 만남에서 그를 설득하였다. 효공은 상앙을 좌서장(左庶長)에 등용하였다. 여기서 상앙은 ‘이목지신(移木之信)’의 고사를 통해 법의 개혁을 추진하고 성공한다.

새 법을 시행한 지 10년이 지나자, 진나라 군대는 강해지고 나라의 재정은 튼튼해졌다. 상앙 또한 재상으로서 상(商)과 어(於) 땅을 하사받아 상군이라 불렸다. 하지만 상앙은 가혹한 법을 시행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원한을 샀다. 특히 태자가 법을 어기자 상앙은 “법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위에서 이를 어기기 때문이다.”라며 태자를 처벌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태자는 왕위를 이을 신분이어서 처벌할 수 없었으므로, 그 대신 태자의 부(傅, 후견인)인 공자(公子) 건(虔)을 처벌하고 태자의 사(師, 교육 담당)인 공손가(公孫賈)를 경형(黥刑, 자자형(刺字刑), 얼굴이나 팔뚝의 살을 따 홈을 내어 먹물로 죄명을 찍어 넣는 형벌)에 처했다.

공자 건이 4년 후 또 범법을 하자 상앙은 그를 의형(劓刑, 코를 베는 형벌)에 처했는데, 이로 인해 상앙은 태자와 그 측근들의 깊은 원한을 사게 되었다.

상앙이 진나라 재상이 된 지 10년이 지나자 군주의 종실이나 외척 중에 그를 원망하는 자들이 많아졌다. 어느 날 조량(趙良)이 상앙을 찾아왔다. 조량은 상앙에게 물러나기를 권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진나라 재상이 되어서는 백성들의 이익을 중요한 일로 삼지 않고 큰 궁궐을 세웠으니 그것을 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태자의 태사와 태부를 죽이거나 이마에 먹물을 들였으며, 무서운 형벌로 백성을 상하게 한 것은 원한을 사고 재앙을 쌓는 일입니다.

당신이 세운 제도는 도리를 등졌고 당신이 고친 국법은 이치에 어긋나니 이것을 교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또 왕처럼 남면하여 과인이라 일컬으며 날마다 진나라의 공자들을 핍박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당신 목숨의 위태로운 상태는 마치 아침 이슬과 같습니다.” 그러나 상앙은 이 말을 깊이 새기지 않았다.

그로부터 다섯 달 뒤 효공이 죽고 태자가 왕위를 이었는데, 이이가 혜문왕(惠文王)이다. 공자 건과 그를 따르는 자들이 상앙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밀고했다. 왕이 상앙을 잡아오라고 하자 상앙은 달아나 함곡관 부근의 여관에 묵으려 했다.

그러자 여관 주인이 말했다. “상군의 법에 따르면 여행증이 없는 손님을 묵게 하면 그 손님과 연좌되어 벌을 받게 됩니다.” 상앙이 탄식했다. “아, 법을 만든 폐해가 결국 여기까지 이르렀구나.” 상앙은 위나라로 갔으나 위나라 사람들은 상앙이 공자 앙을 속이고 위나라 군대를 친 것에 원한을 품고 있어 받아 주지 않았다.

상앙이 다른 나라로 가려고 하자 위나라 사람들이 말했다. “상군은 진나라의 적이다. 진나라는 강한 나라이니 그 나라의 적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상앙을 진나라로 돌려보냈다. 상앙은 다시 자신의 봉지인 상읍(商邑)으로 가서 따르는 무리들과 봉읍의 병사를 동원하여 정(鄭)나라를 쳤다.

진나라는 상앙을 쳐 정나라의 민지(黽池)에서 상앙을 죽였다. 혜왕은 상앙을 거열형에 처하고 백성들에게 돌려 보이며 “상군과 같은 모반자가 되지 마라.”며 경고하고 상앙의 가족을 모두 죽여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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