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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列傳 故事 (66) 睚眦必報[애자필보]
안종운  |  한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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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28  06:5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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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列傳 故事(66)睚眦必報[애자필보]

❏《사기》 〈범저채택(范雎蔡澤)열전〉
睚:눈초리 애 眦:흘길 자 必:반드시 필 報:갚을 보

❏풀이: '눈흘김도 반드시 갚는다'
눈 한 번 흘긴 원한도 반드시 갚는다. 작은 원한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반드시 갚는다는 뜻으로, 도량이 극히 좁은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구조: 睚眦↪(必↪報)
•睚眦(눈초리 애/ 흘길 자) :눈을 흘김, 무시하여 노려봄을 말한다.
(용언이 주체의 행동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동사술어다)
•必↪報(필보): 반드시 보복하다
-必(반드시 필) 틀림없이 꼭(부사)
-報(갚을 보) ‘보복(報復)’앙갚음으로 남이 자기에게 해를 준 대로 자기도 그에게 해를 줌.(동사술어)

❏유래:
전국시대 위(魏)나라에 범수(范睢)라는 사람이 있었다. 범수는 위나라의 대부 수가(須賈)의 문객으로, 수가를 따라 제(齊)나라로 출사(出使)했다. 누구 못지않게 인재를 존중했던 제양왕(齊襄王)은 범수의 뛰어난 재능을 알아보고 상을 내렸다.

별 소득도 없이 출사를 마치고 위나라로 돌아온 수가는 상국인 위제(魏齊)에게 범수가 제양왕과 사적으로 교류한 사실을 고해바치고, 실패의 책임을 범수에게 뒤집어씌웠다.

위제는 범수를 상부(相府)로 끌어가서 반죽음이 되도록 두들겨 패고, 측간 옆에 거적을 깔고 그곳에 범수를 내버렸다. 술 취한 손님들이 거적에 쓰러져 있는 범수의 몸뚱이에 소변을 보았다.

며칠이 지난 후 정신을 차린 범수는 상부의 대청을 지키는 병졸에게 구해 달라고 애원했다. 범수를 가엽게 여겼던 병졸은 술에 취해 있는 위제에게 범수가 죽었다고 거짓 보고를 했고, 위제는 시체를 성 밖에 버리도록 명령했다. 다음 날 위제는 범수의 시체가 없는 것을 알고 전국에 범수를 체포하도록 명령했다.

범수는 절친한 이웃인 정안평(鄭安平)의 집에 숨어 살면서, 장록(張祿)으로 이름을 바꾸고 위나라를 탈출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정안평은 마침 진(秦)나라 소왕(昭王)의 사신으로 위나라에 온 왕계(王稽)에게 범수를 소개했고, 범수의 재능에 감복을 한 왕계는 비밀리에 범수를 데리고 위나라 도성인 대량을 빠져나와 진나라로 들어갔다.

진소왕은 범수를 중용했고, 범수의 계책을 채택하여 외척인 양후(穰侯)와 화양군(華陽君)을 몰아내고 왕실을 튼튼히 만들었으며, 그의 원교근공(遠交近攻) 계책을 받아들여 제후들을 잠식하는 기틀을 세웠다. 후에 진나라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삼진 땅을 가장 먼저 멸망시킨 것은 바로 범수의 원교근공책을 따른 것이었다.

범수는 진나라의 재상이 된 뒤, 진소왕에게 위나라를 치도록 권했다. 당황한 위나라에서는 수가를 파견하여 진나라가 군사를 거두도록 협상하게 했다. 범수는 신분을 감추고 해진 옷을 입고 수가가 투숙한 여관으로 찾아갔다. 범수를 알아본 수가는 그를 불쌍히 여겨 명주 솜옷 한 벌을 주었다.

다음 날 수가는 진나라 재상을 만나러 갔다가 범수가 재상이라는 것을 알고 웃통을 벗고 꿇어앉아 사죄했다. 범수는 그 자리에서 수가를 핀잔했을 뿐만 아니라, 각국의 사신을 초치하여 성대한 연회를 베푸는 자리에서 수가의 죄상을 일일이 따져 물었다.

범수는 수가가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지만, 초라한 행색을 한 자신에게 옛정을 잊지 않고 솜옷을 준 점을 가상히 여겨 용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위제는 용서할 수 없다며 그의 목을 가져오지 않으면 위나라의 국토를 짓밟겠다고 위협했다.

위제는 조(趙)나라를 거쳐 초(楚)나라로 도망쳤다가 받아주는 곳이 없자 할 수 없이 자결하고 말았다. 한편, 왕계와 정안평은 범수의 천거로 각각 하동(河東) 태수와 장군이 되었다.


「범수는 다시 자기 집 재물을 나누어 일찍이 가난하게 살면서 신세 진 사람에게 일일이 보답을 했다. 밥 한 그릇의 덕에도 반드시 보답했고, 눈 한 번 흘긴 원한도 반드시 갚았다.

이 고사는 《사기》의 〈범저채택열전(范雎蔡澤列傳)〉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애자필보는 눈을 한 번 흘겨본 것을 원한으로 새겨두고 반드시 보복하는 것처럼 도량이 극히 좁은 사람 또는 그러한 행위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그리고 밥 한 그릇의 덕에도 반드시 보답했다는 말에서 ‘일반지은(一飯之恩)’이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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