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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列傳 故事(73)膠柱鼓瑟[교주고슬]
안종운  |  한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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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11  07:5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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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운  한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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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列傳 故事(73)膠柱鼓瑟[교주고슬]

❏《사기》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膠 : 아교 교 柱 : 기둥 주 鼓 : 두드릴 고 瑟 : 거문고 슬

❏풀이: 거문고의 기러기발(기둥)을 아교로 붙여놓고 거문고를 타다.
규칙에 얽매어 융통성이 없는 꽉 막힌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기러기발(거문고의 기둥)을 아교풀로 고착시켜 버리면 한 가지 소리밖에 나지 않는다.

❏구조: 膠∣柱 鼓∣瑟
•膠∣柱(교주): 기둥(거문고의 기러기발)을 아교로 붙이고
-膠(아교 교) 아교(阿膠)풀로 짐승의 가죽, 힘줄, 뼈 따위를 진하게 고아서 굳힌 끈끈한 것이다. ‘갖풀’(동사술어)
-柱(기둥 주) 거문고의 기러기발이다(목적어)
•鼓∣瑟(고슬): 거문고를 타다
-鼓(두드릴 고) 악기를 타다, 연주하다(동사술어)
-瑟(거문고 슬) 큰 거문고로 현악기(목적어)

❏유래:
조(趙)나라 효성왕(孝成王) 7년(BC260), 진(秦)나라가 조나라를 치기 위해 출병했다. 양측의 군대는 장평(長平)에서 맞섰다. 조나라에서는 염파(廉頗)를 장군에 임명하여 맞서게 했는데, 염파의 군대는 진나라 군대가 여러 차례 도전해 와도 응전하지 않고 방벽을 굳게 지키기만 했다.

진나라는 이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조나라의 명장 염파를 제거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눈엣가시인 염파를 제거하기 위해 첩자를 풀어 진나라가 두려워하는 것은 염파가 아니라 마복군(馬服君) 조사(趙奢)의 아들 조괄(趙括)이라고 헛소문을 퍼뜨렸다.

「진나라의 심리전에 넘어간 조나라 효성왕은 조괄을 장군으로 삼아 염파를 대신하려 했다. 인상여(藺相如)가 반대했다. “왕께서는 이름만으로 조괄을 쓰시려고 하는데, 그것은 거문고의 기러기발을 풀로 붙여 둔 채 거문고를 타려는 것과 같습니다. 조괄은 다만 그의 아버지가 남긴 병법에 관한 전적(典籍, 혹은 저작(著作))을 읽은 것뿐으로 임기응변을 모릅니다.”
조왕은 듣지 않고 조괄을 장군으로 임명했다.

조괄은 소년 시절부터 병법을 배워 군사에 관한 이야기를 잘했다. 천하에 병법가로서는 자기를 당할 사람이 없다고 자부했다. 일찍이 그의 아버지 조사도 함께 병법을 토론했을 때 조괄을 당해 내지 못했다. 그러나 조사는 아들을 칭찬한 적이 없었다.

조괄의 어머니가 그 까닭을 묻자 조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걱정을 했다. “전쟁이란 죽음의 땅이다. 그런데 괄은 그것을 가볍게 말한다. 조나라가 괄을 장군에 임명하는 일이 없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그 애가 장군이 되면 조나라 군대를 망칠 자는 괄이 될 것이다.”

조괄의 어머니는 아들이 출발하기에 앞서 왕에게 글을 올려 아들이 장군으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장군으로 삼지 말 것을 건의했다. 하지만 왕은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조괄의 어머니는 혹시라도 아들이 소임을 다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을 자식의 죄에 연루시키지 말 것을 왕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왕은 이를 수락했다.

진나라는 조괄이 대장군이 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극비리에 백전노장 백기(白起)를 상장군에 임명했다. 백기는 조나라의 군대를 한곳으로 모아 완전히 섬멸할 작전을 세우고, 장벽(長壁)을 쌓아 진지를 구축했다.

조괄은 싸움터에 도착하자마자 마치 기선을 제압하려는 듯이 군대를 끌고 나와 진나라 군대를 쳤다. 진나라 군대는 거짓으로 패해 달아나며 두 곳에 복병을 배치시켜 조나라 군대의 뒤를 끊게 했다.

조괄이 이끄는 조나라 군대는 몇 번의 승리에 자만하여 계략인 줄도 모르고 득의양양, 승세를 몰아 달아나는 진나라 군대의 뒤를 쫓아 백기가 구축해 놓은 장벽까지 추격했다. 백기의 예상대로 함정에 빠지고 만 것이다.

이때, 진나라의 복병 중 2만 5천의 군사가 조나라 군대의 배후를 끊고, 또 다른 5천의 기병이 조나라 군대와 선발대의 사이를 끊어 식량 보급로를 차단하고 말았다. 계속되는 진나라 군대의 맹공에 퇴로를 차단당한 조나라 군대는 그 자리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공격에서 수비로 전환하여 구원병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진나라 소왕(昭王)은 이 소식을 듣자 몸소 하내(河內)로 거동하여 그곳 주민들에게 벼슬을 내리거나 진급을 시킨 다음, 15세 이상의 장정들을 전원 징발하여 장평으로 보냈다. 이들의 임무는 조나라의 원군을 막아 식량 보급을 계속 차단하는 것이었다.

조나라 군대는 46일 동안 포위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보급을 받지 못해 식량이 떨어졌다. 조나라 군대는 급기야 몰래 서로 죽여 사람 고기를 먹고 버티는 형국에 이르렀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자 조괄은 마지막으로 직접 정예 부대를 앞세우고 포위망을 뚫기 위해 선두에 서서 싸웠으나, 분전 끝에 진나라 병사의 활에 맞아 죽고 말았다.

조괄의 군사 40만 명은 전원 무장을 해제하고 백기에게 항복했다. 백기는 이번 기회에 후환을 없애 버리겠다는 생각으로, 항복한 조나라 군사를 속임수를 써서 모두 구덩이에 처넣어 죽여 버리고, 어린 아이 240명만을 남겨 조나라로 돌려보냈다. BC260년의 일이었다. 조괄의 어머니는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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