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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운의 漢字 이야기 – 공수신퇴(功遂身退)승군장(僧軍將) 김윤후(金允侯). 공(功)을 이루었으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이치(理致)이다
안종운  |  한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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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7.13  19:4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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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운  한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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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신퇴(功遂身退), 천지도(天之道)  공을 이루게 하였으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이치이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에 나오는 글이다.
가득 차 있는 상태(狀態)를 무리해서 계속(繼續) 유지(維持)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두들겨 날카롭게 만든 칼은 오래가지 못하고 금은(金銀) 보화(寶貨)를 집안에 가득 쌓아둔다고 해서 그것을 유지해 나갈 수는 없는 것이다.
부귀(富貴)하여 교만(驕慢)하도록 되면 스스로 화(禍)를 부르게 될 것이다.

공수신퇴(功遂身退) , 일을 이루었으면 물러나는 것이 천도(天道)의 이치이다.

승군장 김윤후 승장. 호국불교의 대표적인  공수신퇴 정신에 대해 살펴 보자!

지금으로 부터 784년 전(前) 천하무적(天下無敵) 징기스칸을 중심(中心)으로 중앙(中央)아시아 대륙(大陸)은 물론(勿論), 페르시아만과 유럽을 차례(次例)로 정복(征服)한 몽골군(軍)은 마침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한 겨울을 틈타 우리나라를 침입(侵入)했다.

살리타이는 몽고(蒙古)의 주력부대(主力部隊)를 이끌고 개경(開京)을 거쳐 오늘날의 서울인 남경(南京)을 공략(攻掠)한 후(後), 중원지역(中原地域)의 중심지(中心地)인 충주(忠州)로 내려가려 하였다.

몽골군이 충주로 향(向)하는 길목인 경기도(京畿道) 용인(龍仁)에 처인성이 있다.

이곳은 식량(食糧)을 쌓아 두는 군창(軍倉)이었는데 몽골군은 군량(軍糧) 보급(普及)을 위(爲)해 처인성을 함락(陷落)해야만 했다.

러나 성안에는 승려(僧侶) 김윤후와 인근(隣近) 부곡민(部曲民)들이 집결(集結)해 몽골군과의 항전(抗戰)을 준비(準備)하고 있었다.

살례탑(撒禮塔)은 처인성(處仁城)을 공격(攻擊)했다.
살례탑이 몽고군을 독전(督戰)하며 전투(戰鬪)에 임(臨)할 때, 김윤후는 항몽전사(抗蒙戰士)로서 활을 들어 살례탑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김윤후의 화살은 살례탑의 목을 관통(貫通)하고, 살례탑은 즉사(卽死)했다. 전투중에 총사령관(總司令官)을 잃은 몽고군(蒙古軍)들은 우왕좌왕(右往左往) 철수(撤收)할 수 밖에 없었다.

목격자(目擊者)들의 증언(證言)에 의(依)해 이 사실(事實)을 보고(報告)받은 고려(高麗) 왕(王) 고종(高宗)은 김윤후의 전공(戰功)을 높이 평가(評價)하여 일약(一躍) 상장군(上將軍)으로 임명하려 했다.

이때 김윤후는 자신(自身)이 화살로 살례탑을 죽인 것을 부정(否定)하면서 공로(功勞)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讓步)했다.

김윤후는 승려로서 사람 죽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또 공수신퇴(功遂身退)정신, 즉“공을 이루면 물러난다”는 순수(純粹)한 호국불교사상(護國佛敎思想)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이곳 처인성은 토성(土城)으로 나무 몇 그루와 야트막한 야산 뿐이다. 초라하고 과거(過去)의 고려  항몽사는 그 어느 한곳 에서도 찾아 볼 수도 없다.

용인시 사암연합회와 불교(佛敎) 신도회(信徒會) 에서 김윤후 승군장(僧軍將)에 대(對)한 다례재(茶禮齋)를 지내고 있을 정도이다.

행사장(行事場)에 참가(參加)한 정치권(政治權) 인사들은 잠시(暫時) 말로만 이른바 호국불교(護國佛敎)의 산 교육장화(敎育場化) 하겠다고 호언(豪言) 장담(壯談)하고 행사(行事)가 지나면 언제 그랬던가 하는 인사치례(人事致禮) 정도(程度)이다.

그리고 용인시에는 김윤후 승장(僧將)에 대한 스님 으로써의 표준 영정(影幀) 조차도 없다.  김윤후 승장은 당시(當時) 분명(分明) 승군장으로 스님의 신분(身分)으로 걸맞는 존영이 제작되어야 되지 않나 감히 생각해본다.

이유야 불구하고 지금(只今) 까지의 지나간 일은 재론(再論)할 필요(必要)가 없다.

우리 다함께 마음 속으로 다시 한번 그 당시의 전투를 생각 해보자. 처인성 전투, 고려와 몽골의 30년 전쟁(戰爭)에서 유일(唯一)한 승리(勝利)로 기록(記錄)되었고, 세계(世界) 전쟁사(戰爭史)에 유래(由來)가 없는 민초(民草)들의 승리! 아! 그 함성이 들리는가.

우리는 간과 한 것이  또 하나 있다.
이 싸움의 승리를 자신의 공(功)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은 활도 쏘지 않았다며 정중히 사양(辭讓)하고 그 공을 부곡민에게 돌린 이른바 김윤후 승군장의 공수신퇴 정신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정신적 최고의 유산이며 역사의 현장 임에도  고려항몽 승전 역사관 조차 하나 없다.

이제 정치권을 비롯한 관련(關聯) 단체(團體)에서 김윤후 승장 표준 영정 및 고려항몽 역사관(歷史觀) 건립(建立)등이 공론화(公論化) 할 싯점(時點)이라고 판단되며, 조속(早速)한 시일내(時日內)에 추진위원회(推進委員會等)가 구성(構成) 되어  종합적인 계획 수립이 필요 하다고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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